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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리 ♤ 마일2리(望洞=바랄 골, 보름 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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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가평문화원
댓글 0건 조회 3,186회 작성일 15-06-12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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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일2리(望洞=바랄 골, 보름 골)

현6리 능봉이 마을을 지나, 신하교를 건너 조종천변을 따라 내려가노라면, 대보1리 마을회관을 끼고 좌측 도로를 따라 500여m를 오르면 마일2리 망동 부락이 나타난다. 마일1리에서 안마일을 경유 여우고개를 넘어서도 이곳에 갈 수가 있다.

망동(보름골)은 마일2리의 소지명으로 "바라는 동내 ; 望洞"라는 뜻이다. 실제로 망동 산제당이 있는 물참나무 아래서 남쪽을 바라보면, 멀리 아늑하게 펼쳐지는 풍경이 마치 신선들이 앉아서 즐길만한 아름다운 절경이 눈 아래 전개된다.

옛날 오성 이항복 대감의 후손이 피난지를 찾아 보름동안이나 찾다가 이곳에 정착했다는 연유로 바랄 망(望)자, 또는 보름 망(望)자를 쓰게 되었다고도 하는데, 이 마을에 최초로 정착하여 가장 오래된 집안이라고 한다.

이 부락에는 조선조시절 숙종대왕 당시, 가평군수를 지낸 이제두(李薺杜)의 손자로 승지를 지낸 이정필(李廷弼)의 묘도 있고, 윗말에는 안동 김씨(安東金氏), 구낙이(龜落 : 큰산에서 거북이처럼 산이 떨어져 나와 생겼다고 하여 구락<龜落>)이라고 하던 것이 구내기로 와전된 산에는 평강 채씨(平康蔡氏), 향나무골에 전주 이씨(全州李氏)의 묘가 있으나 명당 자리가 분명하다.

1950년 6·25사변 당시, 이 곳 출신 유호봉(柳浩奉 당시 21세) 청년이 공비들에 붙잡혀 끌려 다니면서도 애국청년단원들이 숨어 있는 곳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참하게 희생 당한 순국의 역사가 전해 오는데 주민들이 그의 묘에 돌을 세우고 해마다 양력 11월 25일에 제사를 드린다니 그의 죽엄이 헛되지 않으리란 간절한 기원을 빌어본다.

이 곳 마일2리는 망동 단일 부락으로 2개반에 약 4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지형이 남향으로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며, 운악산 포도재배 농가가 30여 호나 되며, 논이 적고 밭이 많은 편이 특징이다.

산제당 터와 두 아람이나 되는 참나무, 한 아름 되는 무푸레 나무 등의 잡목들이 우거져 있는데, 이곳은 웃말 서 병사(徐 兵使)의 묘 앞이 허전하여서 심은 것이라고 하며, 옛 날에는 그곳에서 제사를 올렸다. 현재 그 후손들은 시흥으로 이사가고, 묘만 남아있다.

마을 뒤에는 산이 가파르다고 하여 된봉이라고 부르는 산봉우리가 있고, 그 뒤로는 명지산 줄기로 마봉(馬蜂 : 말을 방목하던 봉우리)의 끝자락인 설악퀴(雪岳퀴, 雪棍퀴)라고 부르는 높은 산이 있는데, 퀴는 험하고 높은 산을 일컬으는 말이라고 하나, 그 어원은 찾지 못하였다.

 

▷ 조사일시 : 2000. 10. 13.

▷ 제 보 자 : 문화원 이사 채수민, 노인회장 이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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