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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리 하면의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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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가평문화원
댓글 0건 조회 2,704회 작성일 15-06-12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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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의 연혁


 하면은 원래 독립된 현(縣)으로서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당시에는 심천현(深川縣), 또는 복사매(伏斯買)라 불렀으며, 신라시대에 준천(浚川)이라고 고쳐지면서 가평군에 감무를 받아왔다. 조종(朝宗)이라는 이름은 고려 현종왕 당시에 붙여졌으며, 이때부터 조종현이라고 불러온다.

명산으로는 운악산(雲岳山 해발 935m)이 있는데, 경치가 너무도 수려한 나머지 가평금강이라 하지 아니하고, 경기금강(京畿金剛)이라 불렀으며, 이 산 능선아래 천년의 고찰인 현등사(懸燈寺)가 있다. 경내에는 지방유형문화재 63호로 등록된 삼층석탑을 위시하여 함허대사 부도탑·지진탑·북악부도 등이 있고, 1619년에 주조된 동종(銅種)은 귀중한 문화재로 여긴다. 또한 관세음보살 후불탱화 등도 빼놓을 수 없는 문화재다.

현등사로 오르는 계곡에는 아기자기한 폭포와 기암 괴석들이 즐비하고 무우폭포·백년폭포·궁소 들은 천하일품이다. 한말 궁내부 시종 무관장이던 민영환(閔泳煥)이 이 곳 무우폭포에 이르러 자신이 누어있던 자리에 이름 세자를 새겨 놓은 것이 더욱 이채롭다.

그밖에 하판리 현등사 입구에는 구한말 을사보호조약에 항의하여 순국한 민영환·조병세·최익현 삼 열사를 추모하여 제사 지내는 삼충단(三忠壇)이 있고, 현리 안곡부락에는 연안이씨비각(延安李氏碑閣)이 있는데, 비각에는 이소한(李昭漢)·이유상(李有相)·이은상(李殷相) 삼부자(三父子)의 신도비가 있으며, 하면 대보리 조종암(지방기념물 28호)과 현리 현창사(縣倉祠) 등은 이 지방의 귀중한 민속문화재로 꼽힌다.

또한 조선조 숙종 24년(1697년)에 쌓은 제방이 현리 조종천에 있었다고 하나, 그 후 다시 축조하여 흔적을 찾을 수 없고, 가평 이씨(加平 李氏)의 시조의 묘가 하판리에 있다는 설도 있으나 정확한 자료가 없다. 다만 민영환이 살던 집터(영양부락)에는 주춧돌 몇 개가 남아 있을 뿐이다.

1871년 당시의 조종 하면의 방리(坊里)를 보면 다음과 같다. 현창(縣倉)·영양촌(永陽村)·석사촌(石沙村)·안곡(安谷)·내세곡(內細谷)·외세곡(外細谷)·신상리(新上里)·신중리(新中里)·중판미리(中板尾里)·정수동(井水洞)·행랑촌(行廊村)·구이목(九耳目)·하판미리(下板尾里)·마일(馬日)·신하리(新下里)·망동(望洞)·하대리(下大里)·다복촌(多卜村)·상대리(上大里) 등, 19동이 있었고, 전체 호수(戶數)가, 624戶였음을 알 수 있다.

 (註 : 규장각도서 가평읍지)


교육기관으로는 조종초등학교와 조종중·종합고등학교가 이 고장의 인재를 육성하고 있으며, 7개의 법정리와 17개의 행정리, 20개의 자연부락에 8,895명의 인구가 거주한다. (가평군 향토지 p43 참조)

일설로는 중종 2년에 중종의 태봉이 있는 곳이라고 하여 군으로 승격을 시켰는데, 숙종 정해년에 이를 다시 현으로 강등을 시키자, 현리에 사는 이영창(李永昌)이라는 사람이 이는 속종이 장희빈의 치마폭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국정을 보살피지 못한 결과라고 왕을 비방하고 다닌다고 하여, 역적으로 몰아 처형하였다는 설이 있는데, 아마도 현으로 강등되었을 때 주민들의 실망을 나타내는 야사가 아닌가 생각된다.

대보리에는 왕에게 절을 올린다는 조종암이 있어서, 이곳의 지명을 조정안이라고 불렀다는 말도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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