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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리 ♧ 신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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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가평문화원
댓글 0건 조회 2,833회 작성일 15-06-12 22:31

본문

♧ 신상리

 신상리는 본래 가평군 하면에 속한 동리로서, 세곡천의 상류쪽에 있다고 하여 윗새말(상신촌 : 上新村)라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내세곡(內細谷)과 하판리, 신주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신상리가 되었다. (가평군지 p1125 참조)

신상리에는 내시들이 몇 집 있었다. 하판리 현등사 입구에 있는 삼충단(三忠壇) 건립을 주동한 13명 중 한 분인, 내시부 첨지 김두환과 그 아들 김기진은 신상2리에, 송영창은 신상 1리에 집을 짓고, 지주로, 환관으로, 사사건건 재력과 세도를 과시하며 경쟁적으로 맞서다가 6·25가 발발하자 김기진은 우익으로 송영창은 좌익으로 돌아서 싸우다가 두 집안이 모두 멸망하였다고 한다.

그 후 신촌(新村)을 신상1리로 능곡(능재말), 양동골(양추), 산월당(산드랭이), 추곡(가래올)을 2리, 그리고 외세곡(外細谷), 내세곡(內細谷)을 3리로 분할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2리 안곡(安谷) 4거리에 도달하면 약사사라는 돌로 만들어진 이정표가 길가에 세워져 있다. 이 곳 약사사가 있는 마을이 신상3리이다.

안곡 4거리에서 북쪽(우측)도로를 따라 가면, 신상1리가 나타나며, 1리에서 약 3km를 지나 신상1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신상교를 건너면 신상2리에 도착하게 된다. 신상리는 민가는 별로 많지 않으나, 행정구역이 광활하여 3리까지 분할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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