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회리 마을명 : 삼회1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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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명 : 삼회1리
본래 양평군 서종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큰 무덤이 있었다하여 쇠 무덤이, 새 모듬 또는 삼회리라고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야미리, 사기막리, 화야리를 병합하여 삼회리라 하였으며 1973년 가평군 외서면에 편입되었다. 이곳 삼회리는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주민 정하섭(鄭河涉)씨가 논을 개간하다가 우연히 돌도끼를 발굴한 바 있다. 그 상태가 원형 그대로이며 그와 같은 유물이 곳곳에 산재하여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앞으로 이를 전공하는 고고학 학자들의 세심한 연구를 기대하기도 한다.(「외서면의 지명 이야기」205쪽)
또한 설악으로 가는 신청평대교를 건너 양평군 문호리 방향으로 363호선 도로를 따라가다 청평초등학교 삼회분교 전방에서 2점의 토기편이 수습된 곳이 있는데, 이곳은 강변지역으로 현재 밭으로 이용하고 있는 지역이다. 출토유물은 토기편 : 빗살무늬 토기 2점, 돌도끼 장타원형의 돌을 골라 양면을 갈아 다듬고 날 부분을 떼어 내어 날을 세웠다는 유물들이다.
(「가평군의 역사와 문화유적」36쪽)
이 곳 삼회1리에는 쇠 무덤, 쇄골, 큰골, 윗 퇴주 등 4개 자연부락의 120여 세대가 거주하고 있고, 직업별로는 요식업, 숙박업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농업인구는 소수에 불과하다. 지방도 363호선을 중심으로 상가(숙박업, 음식점등)가 즐비하게 들어서 있으며, 4계절 화야산을 찾는 등산객들로 성시를 이루고 있다. 마을 앞 북한강에서는 수상 스키어들이 모터보트에 몸을 맡긴 채, 물살을 가르는 장관을 볼 수 있다. 또한 마을의 안녕(安寧)과 평화를 비는 리제가 매년 음력 3월 3일 큰골 안에서 간소하게 지내지고 있다. 일명 "굴뚝계"(일명:대동친목회)라는 조직이 일정 때부터 전래되어 현재도 상가집이 있으면 쌀 대두 1되씩을 모아 상주에게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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