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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리 청평면(구 외서면)의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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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가평문화원
댓글 0건 조회 3,166회 작성일 15-06-12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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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면(구 외서면)의 연혁


 청평면(구 외서면)은 가평군내 교통의 중심지로서 옛부터 문무백관들의 왕래가 빈번하였고, 또한 청평천을 끼고 도는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시인묵객들의 휴식공간이 되어 왔다. 황공탄이 그렇고 푸른 호수의 북한강이 이 지방 경운을 잘 대변해 준다.

문화유적으로는 잠곡서원지가 있다. 잠곡서원은 잠곡 김육(1580-1658년) 선생의 고명한 학문을 숭앙하고, 그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서원이다. 잠곡 김육선생은 1624년(인조 2)에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사관의 길에 들어 동부승지·한성부좌윤·영중추부사 등을 거치면서 대동법을 주장하였으며, 시헌력을 제작하고, 상평통보를 주조 유통토록 하는 등 실학의 선구자가 되었음은 물론 수많은 서책을 간행하여 후생교육에 심혈을 기울인 분이다.

이 어른이 청평리 잠곡동에서 기거하였고 이곳에서 좌명·우명의 두 아들을 낳았는데 우명은 그후 현종의 국구로서 청풍부원군에 봉해졌다.

그러나 이 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폐쇄됐고, 현재는 잠곡서원지에 주추돌과 최근에 유림들이 세운 비석이 있고 제향도 봉행하고 있다.

또한 삼회리 왕방골에는 이태조가 스승을 위해 창건했다는 운곡암이 있고, 이곳 청평리 출신 조병세(1827-1905년)는 의정대신으로서 을사오적의 처형을 상소하며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자 나라를 위해 음독자결하였으니, 이 지방민의 애국충정의 대표적인 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외서면은 1871년 당시 관할동이 비금리·내방동·외방동·상입석·하입석·신촌·오리동·대승리·험천동·청평천·갈오개·잠곡리·오촌·하감천·수리현·상감천·초옥동 중 17개동에 전체 호수가 514호 였다.

그후 청평수력발전소가 준공되어 설악면이 가평으로 편입될 때 남면의 일부(고성리·호명리)를 외서면으로 편입시키기로 하였으나 시행치 않고 있다가, 1943년 10월 남면을 폐지하고 기평면에 편입시킬 때 비로서 고성리·호명리 2개리를 외서면에 흡수시켰으며, 다시 1973년 7월에 관제개편에 의하여 입석리·내방리·외방리를 양주군으로 이관시키고, 외서면은 양평군 서종면 삼회리를 흡수 관할하게 되었다.

현재 외서면은 법정리수가 7개리이고, 행정리수는 21개이며, 16개의 자연부락 총면적 114.49㎢에 총인구가 11,705명이 거주한다.

교육기관으로는 청평보통학교가 그 효시이며, 현재 고등학교 1, 중학교 1, 초등학교 3, 분교장이 1개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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