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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령리 마을명 : 제령리(제구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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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가평문화원
댓글 0건 조회 3,825회 작성일 15-06-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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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명 : 제령리(제구령리)

이 마을은 목동으로부터 서쪽으로 약 3㎞지점에 있으며, 자연부락으로는 상촌, 하촌, 막골, 가둘기 등으로 구성되고, 탁가바위, 중바위, 덕바위, 산제당, 신선바위, 굴바위, 고압철탑 등이 있다.

마을의 주요 시설물로는 유한큐후드 식혜공장, 홍은기도원, 목동교회, 대원사 등이 있다.

옛 노인들은 이 마을의 제령뜰이 동대문 밖에서 두 번째로 크다고 믿고 있듯이, 농경지 정리가 잘된 바둑판 모양의 농경지(논:畓)가 저 멀리 화랑벌까지 펼쳐지고 있다.

제령리 서쪽에 있는 수덕산은 도대리, 소법리, 화악리와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1973년 이전에는 이 수덕산이 화전밭으로 뒤덮여 있었으나, 정부시책으로 화전밭에 잣나무, 낙엽송을 심는 조림으로 녹화되었다.

제령리는 서쪽으로 도대리, 백둔리, 남으로 이곡리, 북으로 소법리, 동으로는 면사무소 소재지인 목동리와 접경하고 있다.

제령리는 지방도로를 따라 마을이 길게 형성되어 있고, 그 거리는 무려 5㎞이상 이나 된다.

 (그외 자료: 「가평의 자연과 역사」354쪽 참조)

이 마을은 옛날 가평군 상북면에 속한 지역으로 이곳에서 생산되는 미곡(쌀:米穀)이 북면지역 주민들의 양식이 되고도 남는다는 뜻의 제구량(諸:모든 제, 口:입 구, 糧:양식 양-모든 입의 양식), 또는 제구량(濟:건질 제, 口:입 구, 糧:양식 양-모든 사람을 건질 양식)이라는 제구령(濟口寧)으로도 표시하였다는 설(「가평의 자연과 역사」354쪽 참조)이 있다.

또 이 마을은 가평천과 화악천이 남쪽과 동북쪽에서 유입되어 합류되는 지대로 두 개울 모두 수량이 풍부한 개울이라 다른 마을과 왕래할 때나 농사철(특히 장마철)에는 개울을 자주 건너야 하는데, 다리(橋)가 없었을 시절, 남의 도움(말이나 가마를 타고 건너면)으로 개울을 건너면 편안하다고 하여 글자 그대로 제(濟:건널 제)자와 영(寧:편안할 녕)자를 합성하여 제령리(濟寧里)로 하였다는 설이 있다. 1914년 일제 때 행정구역을 폐합, 막골과 가둘기를 병합하여 제령리라 칭하였다.

이 마을의 특징은 주민 전체가 빈부의 격차가 별로 없으며, 특산물로는 사과가 있으며, 가평 사과의 주산지가 이 마을이다.

이 마을은 매년 음력 7월중 택일하여 대대울 골짜기 입구 산 제당에서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치성을 올리고 있으며, 2개의 상조계(일심계, 유학계)가 있어 마을 사람이 죽으면 함께 장사를 지내주는 상조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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