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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리 북면의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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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가평문화원
댓글 0건 조회 3,318회 작성일 15-06-1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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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면의 연혁


 가평군 최북단에 위치해 있는 면으로서 동으로는 강원도 춘천시에 인접해 있고, 북으로는 화천군과 서쪽으로는 포천군에 경계를 이루고 있는 심산 준령의 산악지대이다.

본래 북면은 이조말엽까지 상북면·하북면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상북면사무소는 현 도대리 관청부락에 있었고, 후에 제령리로 면사무소를 이전함.

하북면의 소재지는 죽둔리에 있었다. 관할 동(洞)으로는 상북이 제령리(일명 濟救寧里)·도대리·백둔리였고, 하북은 죽둔리·상목동·소목동·이목동·이곡리·소법리·화악리였다.

그후 1896년 관제개혁으로 인하여 상북·하북면을 통합하여 북면으로 개칭함과 아울러 그때까지 포천군에 예속되어 있던 적목리 용소동·조무동(鳥舞洞)·논남기·임산 등이 북면으로 편입되었다.

규장각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가평읍지에 의하면 1871년 현재 북면에는 8개동, 즉, 이곡리·상목동·화악리·소법리·제구령리·도대리·백둔리에 전체 호수가 451호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높은 산 깊은 계곡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북면 지방에는 타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명승비경이 즐비하다.

해발 1217m인 명지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이라던가 적목리 도마천에서 장장 30여㎞나 흘러 내리는 계곡에는 크고 작은 폭포들이 즐비하다. 용소목의 용소(龍沼)는 용이 놀고 있는 형국이고, 도마치의 무주치폭포, 소락동의 소락폭포, 임산부락의 삼단폭포 등은, 아직까지 사람들의 왕래가 드물어 태고의 신비를 맛보게 하는데 충분하다. 모든 계곡이 바위로 되어 있어서 더욱 장관이기도 하지만, 한마디로 물이 흐른다기 보다는, 구슬이 굴러 내린다고 보는게 타당한 말인지도 모른다.

문화유적으로는 적목리 논남부락에 효자 강영천의 효자정문이 있는데, 이 정문은 이조 숙종 27년(서기 1700년)에 하사 받은 내용의 현판이 있으며, 현재의 건물은 1806년(순조 6년) 12월 12일 이오성 목수에 의하여 세워진 것이다.

백둔리 죽터에는 비석바탕의 망두석이 이곳의 수호신이 되어있고, 소법리 이봉골에는 충남 진잠현감을 지낸 바 있는 구하주(후에 가선대부 이조참판에 증직됨)의 묘가 있으며, 소법리에는 전주유씨로 가평군 하면에서 출생하여 별시문과에 급제한 후 장령·필선 등을 역임하고 동부승지가 된 유준창(1601-1670)의 묘도 있다.

그밖에 애국지사 최종화·정흥교·이영헌·장호리의 묘도 모두 북면에 있다.

산이 높고 물이 맑아 주민들의 기상이 뛰어나고, 나라를 생각하는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배출지이기도 한 북면은 문자 그대로 충성의 고장이다.

1896년 을미 의병운동 당시에는 가평의 의병들이 이곳에 주둔해 있었고, 동료들을 구하고자 단신으로 대항했던 의병장 정문위의 출신지가 또한 이곳이며, 3.1만세운동의 시발지가 목동리 멱골·싸리재인 점만 보아도 북면의 기상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중학교 1, 초등학교 1개교가 있으며, 법정리수가 8개, 행정리수 13개에 자연부락이 18개이고, 총인구 4,239명이 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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