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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리 마을명 : 이화리(梨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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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가평문화원
댓글 0건 조회 5,453회 작성일 15-06-12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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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명 : 이화리(梨花里)

가평읍에서 남쪽으로 4km 거리에 놓여 있는 이화리는 골이 깊고 아늑하다. 북쪽에는 장승고개가 있고 남쪽에는 갈치고개가 있는데, 고개가 서로 마주 보며, 그 길이 곧고 긴 관계로 영골이라 부르기도 한다.

조선조 영조시절까지만 해도 이화리는 영골로 기록되었는데 그 이름이 격에 맞지 않는다 하여 배곳이(배대는 곳<串:땅이름 곳>: 나루터)의 배자를 배 '이(梨)'자로 하고 곳을 꽃 '화'(花)로 써서 이화리라는 순 한문식으로 작명한 것이다. 그때부터 이화리라는 이름으로 불려온다. 그리고 일설에 의하면 이화리에는 풍수지리학적으로 배꽃이 떨어져 날리는 형국인 이화 낙자형의 형상이라, 그 곳을 찾아 묘를 쓰면 훌륭한 인재가 배출된다고 하는 전설로 인해 이화리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이화리의 변천사「가평의 자연과 역사」171쪽 참조)

또는 장승고개에 백년 묵은 여우가 있었는데, 너무나 장난이 심하여 지나가던 여자 길손이 놀라 죽었다. 그 여자의 발이 묻히지 못하여 구천을 맴돌고 있으니 이 시신을 거두어 잘 묻어 주면 원혼을 달랠 수 있으며, 이 청을 들어주면 보답하겠다는 꿈속에서의 부탁을 받고 실천하였다. 그 보답으로 장승고개에 금으로 된 화로를 놓아두었는데, 이것을 주은 황부자는 그 화로를 가지고 돌아다니며, "이화로의 임자 없소"하고 돌아다니었다는 전설에서 '이화로'가 이화리로 되었다고도 한다.

 (「가평의 사랑방이야기」참조)

자연부락으로는 염창, 중간말, 양지말, 은상골, 가래골, 무라니 등이 있다. 현재 한산 이씨 20여 가구가 집성을 이루어 살고 있다.

이화리는 가평군 남면에 속해 있었는데, 1871년 제작된 가평읍지에 의하면 이화리에는 61호였고, 주민이 300여명이 거주했다고 기록되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인구 이동이 거의 없는 것이 이 고장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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