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한 여성을 성폭행했다며 경찰에 신고 당하자 피해자를 역고소한 남성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 이어 2심 법원에서도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8부(재판장 정종관)는 준강간과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7일 징역 3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무고 혐의에 징역 1년을 선고한 1심 판결에 대한 A씨 항소는 기각했다.
A씨는 2016년 서울의 한 클럽에서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피해자 여성을 모처로 데려가 성폭행한 혐의(준강간)로 재판에 넘겨졌다. 준강간죄는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해 간음한 때 성립한다. A씨는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경찰에 신고하자, 금품을 노린 허위 신고라며 피해자를 처벌해달라고 고소한 혐의(무고)도 받았다.
이 사건의 재판 과정은 다소 특이하다. 당초 1심에서 법관으로 구성된 재판부가 심리해 A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그런데 2심인 서울고법 형사12부(재판장 윤종구)가 직권으로 1심 판결을 파기하고 다시 심리하라면서 사건을 돌려보냈다.
2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가 A씨에게 국민참여재판을 희망하는지 생각해볼 충분한 시간을 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삼았다. 1심 재판부는 공소장과 국민참여재판 안내서를 A씨에게 보냈지만 송달되지 않았고, 약 4개월 뒤 열린 재판에서 직접 A씨에게 공소장과 안내서를 교부했다. A씨는 당시 국민참여재판을 희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2심 재판부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2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가 피고인에게 국민참여재판 절차에 관한 충분한 안내를 사전에 하거나 그 희망 여부에 관해 상당한 숙고시간을 부여했다고 볼 수 없다”며 “피고인의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권리에 대한 중대한 침해에 해당하고, 위법한 절차에서 이뤄진 소송행위는 무효”라고 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2부(재판장 오상용) 심리로 다시 1심 재판이 열렸다. A씨는 이번에는 국민참여재판을 희망했다. 국민참여재판은 재판에 대한 민주적 정당성과 신뢰를 높이는 의미가 있지만 성폭력 사건에 적용하는 것에 관해서는 법조계에서 우려가 있었다. 배심원 앞에서 피해 진술을 해야하는 등 피해자가 심적 부담을 느끼고 배심원을 통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 즉 ‘강간 통념’이 재판에 반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민참여재판법이 성폭력 사건은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지만, 반대로 피고인에게는 유리한 절차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더군다나 대법원이 2016년 성폭력 피해자가 국민참여재판을 원치 않더라도 배제 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최근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왕기춘 전 유도 국가대표 선수와 같이 법원의 국민참여재판 배제 결정에 불복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A씨의 1심 국민참여재판 결과는 ‘더 높은 형’이었다. 재판부는 준강간 등 혐의에 대해 징역 3년6월, 무고 혐의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총 4년6월로 당초 1심보다 2년6월이 늘어난 것이다. 배심원 5명이 유죄, 2명이 무죄 의견이었다.
두번째 2심 재판 끝에 나온 결론도 마찬가지였다. 서울고법 형사8부는 피해자 진술이 일관되고 피해 신고 경위 등을 종합해보면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성관계에 합의했는데도 ‘블랙아웃’ 증상으로 기억을 못 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블랙아웃은 술을 마셨을 때 의식은 있지만 기억이 없는 증상이다. 준강간 사건에서 피고인들이 단골로 내놓는 주장이고, 법원도 블랙아웃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는 경우가 있었다. 또 A씨는 자신도 술에 취했었기 때문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번 재판부는 이 같은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 일부에는 무죄가 선고됐지만, 형량은 바뀌지 않았다. 재판부는 “A씨는 객관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준강간 당시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변명하면서 반성하지 않고 있다”며 “피해자가 정신적 고통을 겪었는데도 피해회복을 위한 조치를 하지 않았고, 피해자도 처벌을 원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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