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문화원
x

가평문화원 전체메뉴


문화학교
“문화로 따뜻하게 예술로 빛나게”
전통강좌
“문화로 따뜻하게 예술로 빛나게” 가평문화원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아직 남은 나의 길 - 이정은6의 이야기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박은석
댓글 0건 조회 10회 작성일 21-04-29 11:01

본문

아직 남은 나의 길 - 이정은6의 이야기

LPGA님의 프로필 사진

LPGA

공식

{=badgeName}

2020.06.02. 08:53 32,329 읽음 비밀글

통계

LPGA는 오늘 공식홈페이지(lpga.com)을 통해 이정은6 선수의 '일인칭 스토리'를 런칭했다.
지난 번 고진영 선수의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담은 이야기가 큰 호응을 받은 바 있다. 이번 이정은6 선수의 이야기도 못지않은 감동적인 사연을 담았다.
앞으로도 LPGA는 선수들의 재미있고 감동적인 스토리를 그들의 언어로 전달할 예정이다.


아직 남은 나의 길
-이정은 6
 
모든 삶에는 전환점이 있고 , 선택의 갈림길이 있다 . 눈 앞에 보이는 넓고 안전하며 쭉 뻗은 길을 택할지 , 아니면 결말을 예측하기 어려운 좁고 울퉁불퉁하며 굽이친 길을 선택할지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 하지만 당시에는 선택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그 여정이 얼마나 큰 차이였는지를 깨닫게 된다 .
 
나는 9 살에 골프를 시작했다 . 아버지의 지인이셨던 티칭프로님이 골프를 시켜볼 것을 권하셨다 . 부모님 역시 내가 바깥에서 운동을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 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트럭을 운전하셨다 .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네 살 때 교통사고를 당하셨고 ,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장애를 입으셨다 . 당시의 어린 나는 아버지가 결정한 선택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다 . 당시 아버지는 자기 연민에 빠져 있을 수도 , 인생을 포기하셨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 하지만 아버지는 새로운 환경에 대해 배우고 적응하며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셨다 .
 
그 결정은 아버지의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왔지만 , 그 모습은 내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사춘기를 겪는 또래 친구들처럼 , 12 살이었던 나는 골프가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 그 당시 나는 골프라는 운동을 사랑하지는 않았다 . 떠밀려 배우는 기분이었다 .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3 년 동안 골프를 쉬었고 , 부모님은 이해하셨다 . 부모님은 내가 행복해지기를 원하셨다 .
 
나는 대부분 한국하면 떠올리게 되는 서울같은 대도시와는 거리가 먼 전라남도 순천에 살았다 . 순천에서의 생활은 느리다 .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안다 . 그 지역을 떠나는 사람도 많지 않고 , 모든 이웃들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
 
15 살 때 다시 골프를 시작했는데 , 이번에는 내가 원한 것이었고 티칭프로를 목표로 한 것이었다 . 골프를 충분히 잘 하게 된다면 순천에서 티칭프로로서 좋은 생활을 할 수 있었다 .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70 대 초반의 스코어를 내야 했기 때문에 열심히 운동을 했다 . 17 살이 되었을 때 내가 알고 있던 서울의 유명한 감독님께서 학교와 골프를 병행할 수 있는 골프 아카데미의 기숙사에 들어오겠냐고 제안하셨다 .
 
그것이 나의 첫번째 갈림길이었다 . 나는 집에 머물러 있어야 할 이유를 생각해낼 수 있었다 . 아버지의 존재는 내가 집에 머무를 수 있는 확실하고 완벽한 이유였다 . 휠체어에 앉아 계신 아버지로부터 멀리 떨어지기 싫었다 . 사실 , 나는 좀 무서웠다 . ‘ 내가 그곳에서 훈련할 만큼 충분한 실력일까 ?’, ‘ 서울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힘들까 ?’, ‘ 내가 향수병에 걸리지나 않을까 ?’ 등등 걱정이 많았다 .
 
두렵긴 했지만 움직이기로 결심했다 . 그리고 그것이 나의 전환점이었다 .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 순천에서 벗어나 부모님으로부터 떨어져 새로운 친구들과 우정을 쌓고 공부와 훈련을 할 수 있을 만큼 단련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 이전 보다 골프 실력도 훨씬 좋아졌다 .
 
순천에서는 지역의 작은 주니어 대회와 아마추어 대회에 출전했지만 한 번도 우승한 적이 없었다 . 아카데미에 있는 동안 , 나는 최고의 아마추어들이 출전한 전국 대회에서 우승했다 . 그리고 그 순간 , 내가 좋은 선수들과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
 
원래 계획이었다면 19 살쯤 , 모든 것이 편안하고 친숙한 우리 집 근처에서 티칭프로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 선택의 결과 , 나는 내가 6 번째로 이정은이라는 이름을 가진 KLPGA 의 투어 선수가 됐다 . 거기서 내 이름 끝에 있는 숫자 6 이 유래되었다 . 난 숫자에 불과했다 .
 
그 후 , 나는 좋은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 KLPGA 2 년차 때 나는 4 번 우승했고 상금왕을 기록했다 . 그 해 여름 , 나는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내셔널에서 열린 US 여자오픈에도 출전했다 . 그 대회는 나의 첫 메이저 참가였고 , 또 미국에서 다른 선수들과 경기한 첫 경기였다 .
 
나는 남들과 다르게 만들어 주었고 , 행운의 숫자라고 생각했던 ‘6’ 을 지키기로 했고 모든 사람이 내 이름 뒤의 숫자에 대해 궁금해했다 . 비록 영어를 전혀 못했지만 나는 모든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
 
나는 그 해의 US 여자오픈에서 5 위를 했고 , 토요일에 마지막 그룹에서 경기도 했다 . 그때 나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
 
2018 년에는 KLPGA 에서 2 승을 했고 또 다시 상금왕을 차지했다 . 그리고 내 인생의 또 다른 갈림길과 마주했다 . 한국에 머물면서 KLPGA 대회에서 우승하고 익숙한 사람 , 문화 , 언어 속에서 경기하며 가족과 함께 음식이나 교통 , 환전 , 시간대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곳에서 편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 아니면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도전하기 위해 영어로 소통해야 하는 단체인 LPGA 의 퀄리파잉 스쿨에 갈 수도 있었다 . 나는 골프가 아닌 다른 모든 것에 대해 긴장되고 조금은 두려웠다 .
 
어린 시절에 내가 더 일찍 고생스럽고 불확실한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 LPGA 에서 뛸 수 있었을까 ? 아마도 2019 US 여자오픈에서 우승하거나 루이즈 서그스 롤렉스 올해의 신인상을 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
 
지금도 영어를 잘 하지 못해서 편하지는 않다 . 나는 신인 시절 내내 나의 영어 실력에 대해 기자들에게 미안했다 .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내가 원하는 정도는 아니다 . 지난해 가을 롤렉스 어워즈에서 신인상 수상 연설을 하며 감정이 격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 투어를 시작한 당시부터 낯설고 이국적이었던 영어 단어와 구절을 외우며 3 개월 동안 연설문을 연습했다 . 내게는 그 연설을 영어로 해서 , 청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나의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하는 것이 중요했다 .
 

모든 연설을 마친 후 , 압도될 만큼 큰 박수를 받았다 . 눈물나는 순간이었고 절대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 올해는 내 영어 실력이 더 좋아질 것이다 . 다시 우승할 때는 바라건대 정확한 표현으로 나의 감사를 전하고 싶다 .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쉽거나 편하진 않았다 . 하지만 가치있는 길은 늘 그렇다 . 이제 24 살 밖에 되지 않은 내가 오래전에 배운 교훈이다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